안뜰
Mother’s Restaurant ‘Antteul’
2017
한상국
어머니는 전라도 광주에서 ‘화원’이라는 이름의 작은 소주방을 8년째 운영하셨습니다.  8년이 되던 그해에 계약 문제로 가게를 내놓으셨고 다른 곳으로 가게 위치를 옮겨야 했습니다. 마침 그즈음 저도 퇴사를 한 상태였고 어머니 가게 오픈을 도와드릴 수 있었습니다. 피, 땀, 눈물 흘려가며 뼈가 시리도록 하루하루 벌어 보내준 대학에서 4년간 배운 디자인, 실무에서 4년 동안 겪은 디자인을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의 가게에 써먹을 좋은 기회였습니다. 생각해보니 어머니와 이토록 오래 붙어있던 적이 있었을까요? 제가 어릴 적부터 식당을 운영하셨던 어머니는 온전히 저와 시간을 보내기엔 사는 게 너무 바빴고, 저 또한 성인이 된 이후 서울에 올라와 지내다 보니 명절을 제외하곤 같이 붙어있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운이 좋게도 제가 다음의 출발을 준비하는 시간과 어머니가 가게를 이전하는 한 달의 시간이 일치했고, 그 한 달 동안 나의 어머니가 아닌 한 가게의 사장으로서, 한 인간으로서의 면모를 볼 수 있어 참 행복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했고, 추진력 있는 사업가다운 기질이 있었으며, 힘들다곤 했지만 가게 운영에 관해 이야기할 때(메뉴, 손님 이야기 등) 가장 눈이 빛나 보였습니다. 그런 어머니 밑에서 자란 나이기에 ‘가슴속에 항상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거구나. 유전자의 힘은 참 대단하다’고 중얼거리며 어머니가 아닌 한 사람의 클라이언트라 생각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어머니 가게의 아이덴티티가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했습니다. 
그 당시 어머니의 가게가 저녁엔 항상 북적거려 지나가는 사람이 보기에 장사가 잘되는 걸로 보였나 봅니다. (테이블 수가 몇 개 안 되다 보니 실상 그렇진 않았습니다) 가게를 인수하고자 하는 분께서 ‘화원'이라는 가게 이름을 권리금에 포함 받길 원하셨고, 어머니는 다른 동네에서 장사하리라 생각했기에 가게 이름을 흔쾌히 넘겨주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원래 가게가 있던 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곳에 가게를 얻었고 권리금에 포함해 넘겨주었던 이름을 쓰기엔 상도덕에 벗어나는 일이었습니다. 8년간 썼던 이름을 버리고 다시 이름을 지어야 했습니다.
어머니가 이름을 고민하던 때에 저는 퇴직금을 탕진하며 3주간 유럽 여행을 떠나던 중이었습니다. 그때 해외에 있는 아들의 안부를 걱정하는 내용이 아닌 가게 이름을 어떻게 지을지 걱정하는 문자가 오곤 했습니다. 그 전에 몇 개의 브랜딩 작업을 하다 보니 네이밍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무엇보다 오너가 좋아하는 이름이어야 하고 그 이름에 오너가 추구하고자 하는, 손님에게 제공하고자 하는 많은 것들이 함축적으로 담겨야 했습니다. 마치 사람처럼 이름 짓는 대로 가게의 성격이 좌지우지되고 성공할지 실패할지가 이름 짓는 과정에서 보이기도 했습니다.
뭐 작은 소주방 이름 대충 지으면 되지'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손님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은 건지 편안함을 주고 싶은 건지 여러 가지 생각해보고 어머니가 가장 마음에 드는 이름을 지었으면 했습니다. 가게가 위치한 특성을 반영하여 ‘삼거리 ~’라고 이름 지을까 여러 고민 끝에 다시 어머니에 집중했습니다.
제가 어머니 가게에 머물며 일해본 시간 동안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맛도 맛이지만 손님들이 어머니가 당신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굉장히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 그것을 어머니도 자신의 장점이라 여기고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안뜰>이라는 단어가 떠올랐고 그 전 가게 이름인 <화원>과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느낌이라 좋았습니다. 손님이 어머니의 가게를 안뜰처럼 편히 머물다 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어머니께 제안했더니 큰 고민 없이 <안뜰>이란 이름을 택했습니다. 그냥 <안뜰>이라고 하기엔 너무 계절 음식 전문 소주방 느낌이 나지 않아 무게감을 낮추기 위해 <맛있는 한 잔, 안뜰>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군대 전역 후 막 복학하여 열정만 넘치던 저에게 어머니로부터 어느날 전화가 왔습니다. “아들~ 엄마 가게 간판이랑 메뉴판 좀 디자인해줘!” 한창 겉멋만 들어있던 저는 어줍짢은 여백의 멋에 빠져 작은 글씨로 일식집 같은 디자인을 했고, 작은 소주방을 운영하시는 어머니는 이걸 보라고 만들었냐며 화를 내셨습니다. (그땐 어머니의 말이 너무 서운하고 섭섭했습니다) 어느 날 가게에 방문했을 때, 어떤 손님은 저에게 “자네는 저게 보이는가? 누구 약올리려고 만들었나?”라며 직접적으로 화를 내기도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제 디자인에 맥락이 없었음을 알고 자기 반성 디자인의 습관을 길렀습니다. 그때의 사건이 한이 된 것일까요? 디자인 컨셉을 어머니 가게의 주 타겟층인 40~60대 아저씨들을 위한 ‘노안 디자인'으로 잡았습니다. 글씨가 작아서 안보인다고 하면 눈을 바꾸라고 되려 화를 낼 정도로 큼직큼직하게  디자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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